치매걸린 할머니의 곰국...
변두리에 사는 어떤 부부가 일찍이 혼자되신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할머니는 일찌기 남편을 사별하고, 외아들을 혼자서 키우셨지만, 여러 가지 형편으로 아들의 경제적 여건도 그렇게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도시 외곽의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할머니와 며느리는 밭농사를 짓고, 아들은 트럭을 몰고 농수산물 시장에서 물건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젊을 때 고생을 많이 하신 할머니가 몇 년전부터 치매 기운이 조금씩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나마 하루 중에 스무 시간 정도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시고, 저녁이나 밤 무렵에 서너 시간 정도만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치매 증상을 드러내시곤 하셨다,
이들 부부 입장에서는 아무리 치매가 있으신 노인이라도, 차라리 24시간 완전 치매라면 며느리가 아예 곁에 붙어서 수발을 들겠지만, 대개는 멀쩡하시다가 한번씩 그러시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치매증상이 나타나시면 할머니방에 혼자 계시게 하고 문을 잠가 두거나, 아니면 며느리가 곁을 지켰었는데. 그나마 대개 증상이 밤에 나타나셔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밤에는 밖에서 문을 얼어 잠궈두면, 혹시 문제가 생기시더라도 방을 더럽히는 것 말고는 그래도 가출을 하시거나 위험한 일을 하시지는 않는 데다가, 밤에는 아들도 집에 있어서 할머니가 설령 발작을 하셔도 감당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건 그 부부는 노모를 모시고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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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며느리가 노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시장에 다녀왔다.
원래 시장을 갈일이 그리 잦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시장에 들러서 이것저것 사야 했고 그럴 때 며느리는 낮에는 멀쩡하신 노모에게 늦게 얻은 아이를 맡기고 얼른 다녀오곤 했다.
할머니도 늦게 본 손주라 애지중지 하셨고 그들 부부에게도 아이는 그나마 유일한 행복이었다.
며느리가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서 장을 본 다음 두시간 정도 후에 집에 돌아오자, 아이를 보던 노모께서 장 보고 오느라고 수고했다고 반겼다.
"수고했다, 어서 배고픈데 밥먹자, 내가 너 오면 먹으려고 곰국을 끓여놨다 "
며느리는 곰국을 끓여 놨다는 할머니 말에 갸우뚱했다. 최근에 소뼈를 사다 놓은 적도 없는데 노모께서 곰국을 끓이셨다길래 의아해하면서, 부엌에 들어가 보니 정말 솥에서는 김이 펄펄 나면서 곰국을 끓이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며느리는 그 솥 뚜껑을 열어보고는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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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가능하면 담담하게 이 끔찍한 일을 기록하려고 하고 있지만, 다시금 그 장면을 기억하는 내 심장이 부담스럽고, 손에는 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 뜨거운 솥에는 아이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검안을 위해 응급실로 들어왔다
그때 나는 생애에서 가장 끔찍하고 두번 다시 경험하기 싫은 장면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나는 나대로 피가 얼어버리는 충격속에서 응급실 시트에 올려진 형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진 아이의 몸을 진찰하고, 앞뒤로 살피면서 검안서를 기록해야 했고, 또 너무나 끔찍한 장면에 차마 눈을 감아버리고 아예 집단 패닉 상태에 빠져 스테이션에 모여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혼란도 같이 다독거려야 했다,
아이 엄마는 아예 실신해서 의식이 없었고, 할머니는 그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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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후 이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일이 이후에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검찰에서 요청한 검안 기록에는 직접사인 "심폐기능 정지", 선행사인 " 익사에 의한 호흡부전", 간접 사인 "전신화상"으로 기록을 남겼고, 내 도장을 찍었다.
아마 그일로 인해 입어야 할 남은 가족들의 고통은 끔찍했을 것이다,
더구나 정신이 돌아왔을 때, 자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손자를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할머니가 받을 고통은 어땠을까.. 아울러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평생을 겪어야 할 그 잔인하고 끔찍한 고통은 어떠할까.. 차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부디 가족해체만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이후의 일에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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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글을 쓰면서 내가 지금 치매나 기타 노인질환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글을 쓴 것인지. 아니면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극단적인 가혹함이 이런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 자신도 목적지를 잃어버렸다.
또 이 글을 쓰면서 떠올리게 된 그 참혹한 장면들을, 더 세밀하게 기억해내지 않기 위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내쳐 글을 적으면서도, 내가 이글을 올린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조차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삶은 이렇게 대책 없이 참혹하기도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2004/12/27 시골의사
ㅡ출처ㅡ시골의사 박경철 블로그